[론게 오리지널] 그라운드 위의 태양 2
- 익명_a8f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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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윤서준은 요즘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처럼 책을 읽고 있는데, 활자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강현우가 자꾸 생각났다.
운동장에서 빛나던 모습, 장난스러운 목소리, 그리고—
손.
서준은 무심코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봤다. 편의점에서 현우가 잡았던 손.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것만 같았다.
“…미쳤나 봐.”
서준은 혼자 중얼거리며 책을 덮었다. 그 순간, 창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준아!”
서준이 고개를 들자, 현우가 교실 창문 너머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랑 밥 먹자!”
“…갑자기?”
“그냥! 가자~”
거절할 틈도 없이 현우는 교실로 들어와 서준을 끌고 나갔다.
식당에서 현우는 평소처럼 많이 먹었다. 반면 서준은 천천히 숟가락을 들었다.
“넌 진짜 조금 먹는다.”
“원래 그래.”
“좀 더 먹어. 너 너무 말라서 안 돼.”
현우는 자기 반찬을 서준의 식판에 덜어주었다. 서준은 가만히 그것을 바라봤다.
“…왜 이렇게 잘해 줘?”
“음?”
“나한테.”
현우는 숟가락을 입에 물고 서준을 바라보더니, 갑자기 싱긋 웃었다.
“좋아하니까?”
서준의 손이 멈췄다.
“…뭐?”
“너 좋아하니까.”
현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서준의 머릿속은 새하얘졌다.
그런데도 현우는 태연하게 밥을 먹으며 덧붙였다.
“아, 물론 네가 나한테 관심 없으면 어쩔 수 없고. 그냥 내가 좋다고 말하고 싶었어.”
서준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심장이 너무 빨리 뛰었다. 밥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 다 먹었어.”
그렇게 말하고는 서준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우는 그런 서준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 그럼 나도 다 먹었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서준의 옆에 서서 걸었다.
마치, 언제든 옆에 있을 수 있다는 듯이.
5
윤서준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 좋아하니까.’
강현우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장난처럼 말했지만, 눈빛은 진지했다. 현우는 늘 솔직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나도 좋아하는 걸까?
책을 덮고 손을 가만히 쥐었다 폈다. 며칠 전, 편의점에서 했던 거짓말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사람 있어?
—…있어.
그때 이미 답을 알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다음 날, 쉬는 시간.
서준은 무의식적으로 운동장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축구부 훈련을 마친 현우와 눈이 마주쳤다.
현우는 활짝 웃으며 다가왔다. 땀이 흐르는 이마를 손등으로 훔치며 익숙하게 서준의 옆에 섰다.
“또 보러 왔어?”
“…아니.”
“거짓말.”
현우는 키득거리며 서준을 가볍게 툭 쳤다.
그 순간, 서준이 입을 열었다.
“그때 말했던 거.”
“응?”
“나… 너한테 관심 있어.”
현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예상 못 한 듯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곧, 환하게 웃었다.
“그럼 나랑 사귈래?”
서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현우는 서준의 손을 잡았다.
운동장 위의 태양 같은 사람.
그 온기가, 이제는 서준의 것이었다.
6
비가 내렸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가 조용한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축구부 훈련이 취소된 날, 강현우와 윤서준은 서준의 집에서 함께 있었다.
“비 올 때마다 네가 생각나.”
현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준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왜?”
현우는 대답 대신 천천히 서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손끝이 뺨을 따라 내려오다 턱을 가볍게 쥐었다.
“몰라. 그냥… 좋아.”
그 말과 함께 서준의 입술이 닿았다. 처음엔 가볍게, 그러다 점점 깊어졌다. 서준은 긴장한 듯 어깨를 움츠렸지만, 현우의 손이 천천히 허리를 감싸자 조금씩 몸을 맡겼다.
입술이 떨어졌을 때, 서준의 숨이 거칠게 들려왔다.
“나… 처음이라.”
서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현우는 그 말에 조용히 웃으며 서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알아.”
촉촉한 피부가 닿는 감각. 얇은 옷 사이로 느껴지는 체온. 서로를 천천히 탐색하듯 손길이 스쳤다.
창밖으론 여전히 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어둑한 방 안에는 습기 어린 공기가 가득했다. 촉촉한 공기 속에서 서로의 체온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서준은 숨을 삼켰다.
“긴장했어?”
현우의 저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그의 손이 천천히 서준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떨리는 숨결이 가까워지다, 입술이 조심스럽게 맞닿았다.
부드럽게, 천천히. 하지만 감각이 점점 깊어질수록 서준은 온몸이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현우의 손이 허리를 감싸고, 서준은 그 손길에 몸을 맡겼다. 눈을 감고 그의 온기를 느끼려는 순간—
“…너무 커.”
서준이 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현우는 작게 숨을 내쉬며 웃었다. “그래서 천천히 하고 있잖아.”
서준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내 얕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
“…잠깐만.”
현우의 손이 멈췄다. “괜찮아?”
서준은 답하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조금만 더…”
현우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진짜 괜찮겠어?”
서준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몇 번의 시도 끝에 결국 눈을 꼭 감고 몸을 웅크렸다.
“…너무 아파.”
숨이 떨렸다. 현우는 바로 멈추고, 서준을 꼭 안아 주었다.
“괜찮아. 안 해도 돼.”
“근데…”
“천천히 하면 돼. 무리할 필요 없어.”
다정한 손길이 등을 쓸어내렸다. 서준은 천천히 긴장을 풀고 현우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창밖의 빗소리는 여전히 부드럽게 흘렀다.
서툴렀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처음이니까. 그리고 서로가 곁에 있으니까.